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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은 모두 다 한번쯤은 보셨을 영화라 생각한다. 특히 영화 초반 덕수와 아버지가 수많은 피난민들 사이에서 헤어지는 장면은 많은 분들의 눈물을 쏟아내기에 충분했는데 바로 이 장면이 흥남 철수 작전이었다.


▶6.25 전쟁중이던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 까지 진격하며 전쟁의 끝을 알리나 싶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후퇴를 하기 시작한다. 전세가 불리해진 유엔군 사령부는 철수 명령을 내리게 된다.

▶12월12일 부터 시작된 철수 작전은 15일 미군 1해병사단을 시작으로 APA 6척, LST 81척, LSD 11척 등 총 193척의 배들이 흥남 앞바다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철수 작전에는 1순위 병력자원, 2순위가 군사물자로 철수대상엔 민간인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된 미 10군단 알몬드 장군의 고문이었던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 박사와 1군단 단장 김백일 장군은 미국장군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현봉학 박사>

이러한 설득에도 미국장군들이 난색을 표하자 한국군의 지휘관들은 "피난민을 버리고 가느니 차라리 걸어서 후퇴하겠다고 "강력히 반발했고 알몬드 장군은 이러한 지휘관들의 모습에 결국 동의를 하게 된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그렇게 본격적인 철수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번 철수 작전을 위해 수송선과 배들이 추가도 투입이 되었으나 10만명이나 되는 피난민들을 이송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쩔수 없이 정원이상의 사람들을 태울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철수작전은 계속 진행 되고, 20일 부산에서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흥남부두에 도착을 한다. 메러디스호는 7600톤의 화물을 실을수 있는 무역선으로 철수 작전 가장 마지막에 남은 배중 하나였다. 사실 메러디스호가 꼭 피난민을 태워야할 의무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목격한 메러디스호 라루 선장은 망설임 없이 피난민들을 태우기 시작한다.

▶정원이 59명인 이 배에는 이미 선원과 승무원원들이 타고 있어 실제로 탑승 가능한 인원은 12명 뿐이었다. 또 300톤의 항공유가 있어 혹시나 공격을 받으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 Leonard LaRue>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만4000천 여명의 피난민과 17명의 한국군 헌병을 태운 뒤 흥남을 떠났다. 이미 탑승인원을 초과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물 뿐만 아니라 음식, 옷 모든것이 부족했다. 대소변 등 생리적인 현상도 문제였지만 이들은 살아 돌아 갈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이렇게 힘들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5명의 새생명이 태어났다. 그들의 이름은 kimchi1, kimchi2 이렇게 불렸으며, 현재 신원이 파악된 사람으로는 <Kimchi 1호 손양영씨> <Kimchi 5호 이경필씨> 이렇게 두분이 계시다고 한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무사히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이미 수많은 피난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상황이라 어쩔수 없이 다시 거제도로 목적지를 변경. 26일 거제도에 피난민들을 무사히 내려 주게 된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기적을 보여준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이번 활약으로 "단일 선박으로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배(the greatest rescue operation ever by a single ship)"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흥남 철수를 완료하면서 미군은 혹시나 모를 중공군의 무기탈취등을 이유로 홍남부두를 폭파 시켰으며, 이때 싣지못한 군장비들도 함께 폭파시켰다.

▶이번 흥남 철수 작전으로 한국과 유엔군의 병력 105,000명, 북한 피난민 98,100명 차량 17,500대, 각종 물자 350,000톤을 챙겨 나오는 성과를 이뤘으나, 한편으로는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나타났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흥남 철수 작전 기념비>